일본의 선사시대 대분화 이후 모든 지역이 같은 인구 감소를 겪었을까. 새 논문은 지역별로 다른 궤적을 추정했지만, 보충자료의 모형 비교는 화산재 두께가 그 차이를 충분히 설명한다는 결론까지 뒷받침하지 않는다.
‘살아남았나’보다 ‘무엇을 측정했나’
엔리코 크레마 연구진의 논문 ‘Divergent demographic responses to the Kikai-Akahoya volcanic catastrophe in mid-Holocene Japan’은 동료심사를 거쳐 Science Advances에 2026년 10월 14일 온라인 공개됐다. DOI는 10.1126/sciadv.aeh7197이다. 연구 질문은 약 7,300년 전 기카이·아카호야 분화 전후, 조몬 공동체의 인구 궤적이 지역마다 어떻게 달랐는지다.
독립 매체 라 라손의 10월 20일 보도도 정확한 주민 수를 계산한 연구가 아니라는 점을 짚었다. 이 보도는 연구를 이해하는 맥락 자료이며 독립적인 재현 연구는 아니다. 기사에서는 원문과 보충표를 대조해 ‘지역 차이를 추정했다’는 결과와 ‘차이의 원인을 밝혔다’는 해석을 나눠 살핀다.
사람 540명이 아닌 연대 측정 540건
보충자료에 따르면 표본은 일본 주요 네 섬의 324개 지점에서 나온 방사성탄소 연대 540건이다. 연구진은 가까운 장소·시기의 중복 측정을 줄인 뒤, 공간을 61개 구역으로 나눴다. 비교 기준은 같은 분석 틀에서 분화 전후 각 750년이다. 이는 실험 대조군이 아닌 역사 자료의 전후 비교다.
모형 A는 두 기간 각각의 성장률을, 모형 B는 전체 연대자료 중 분화 이후 자료의 상대적 비중을 추정했다. 측정자료의 시간별 분포를 인구활동의 대리 지표로 사용하므로 주민 명부나 사망 통계와는 다르다. 전후 각 500년·1,000년으로 바꾼 분석도 했으며, 더 긴 기간에서는 일부 변화가 약해졌다.
성장률과 전체 규모를 구분하면 결론이 달라진다
원문은 남·중부 큐슈의 감소 신호와 북부 큐슈의 성장 지속을 대비한다. 그러나 북부 큐슈는 모형 B의 불확실성이 커, 분화 전후 연대자료의 전체 밀도가 달라졌는지 확정하지 못했다. 성장 추세를 보였다는 결과가 곧 분화 뒤 인구 총량이 늘었다는 증거는 아닌 것이다.
이 논문의 기여는 재난 전부터 이어진 변화와 이후의 지역 차이를 함께 추정했다는 데 있다. 실제 사망자 수나 북쪽으로 이동한 사람 수를 산출한 것은 아니다. 비교 가능한 과거 연구의 원자료를 별도로 대조하지 않았으므로, 이전 방법보다 정확해졌다는 주장도 하지 않는다.
보충표의 비교 모형이 보여주는 설명의 한계
화산재가 두꺼울수록 인구 감소가 컸다는 설명은 어느 정도 지지를 받을까. 보충표 S2에서 화산재 두께를 포함한 주 모형 B의 WAIC는 6352.052, 해당 설명변수를 제외한 B0는 6350.583이었다. 낮은 값이 유리한 모형 비교 기준에서, 화산재를 넣었다고 더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두 값의 차이 1.469를 화산재가 무해하다는 증거나 피해 감소율로 읽어서는 안 된다. 저자들도 모형 비교로 화산재의 영향을 확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표본이 적은 지역의 불확실성과 복잡한 인구 변화를 감안하면, ‘지역별 차이가 있다’와 ‘그 차이는 화산재 때문’ 사이에는 설명이 더 필요하다.
현대 재난 대응에 쓰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저자들은 두꺼운 화산재가 과거 생활을 파괴했을 가능성뿐 아니라, 오늘날 유적을 발견하기 어렵게 만들어 자료 수를 줄였을 가능성도 지적한다. 북부 해안으로의 이주와 해양 자원 이용은 가능한 설명이지만, 인구 모형만으로 확정된 원인은 아니다.
기사의 해석으로는 이 연구가 제공하는 것은 지역별 회복 경로를 따져볼 질문이다. 현대의 대피 효과나 복구 기간을 계산하는 도구로 곧바로 옮길 수는 없다. 원문이 제안하듯 더 촘촘한 정착 연대와 지역 환경 회복 자료를 확보해야, 이동·생계 변화와 인구 궤적을 더 분명하게 연결할 수 있다.





